“단순 폭행·협박해도 강제추행 인정”…40년만 ‘항거 곤란’ 법리 변경

“단순 폭행·협박해도 강제추행 인정”…40년만 ‘항거 곤란’ 법리 변경

강윤혁 기자
강윤혁 기자
입력 2023-09-21 18:01
수정 2023-09-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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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 판단
폭행 행위 자체가 강제추행인 ‘기습추행형’ 판단 제외
상대방 항거를 곤란할 정도 요구하던 기존 판례 변경
15세 여사촌 동생 강제추행 혐의 받던 군사법원 사건
1심, “성폭력처벌법상 친족관계 강제추행 징역 3년”
2심, “공포심 느끼는 협박·저항 곤란 폭행 인정 안돼”
“청소년성보호법상 위력 추행 유죄 벌금 1000만원”
대법 다수의견 12명, “문언 해석상 단순 폭행·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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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김명수 대법원장,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2023.9.21
대법원 제공
대법원이 ‘항거(저항)가 곤란한 정도’를 요구했던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낮추면서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1983년부터 적용된 종래 판례 법리가 40년 만에 바뀐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위력에 의한 청소년성보호법상 추행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A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군사법원법 개정에 의해 군사재판의 항소심을 담당하는 서울고법으로 보냈다.

군인 A씨는 2014년 8월 자기 집 방안에서 15세였던 여자 사촌 동생을 끌어안거나 가슴을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군사법원에 기소됐다. 1심 군사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피해자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추행행위를 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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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DB
서울신문DB
반면 2심 고등군사법원은 A씨가 했던 “만져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말이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피해자를 침대에 눕히거나 양팔로 끌어안은 행위 등을 할 때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다수의견(12명)은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강제추행죄를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하던 옛 관념의 잔재라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며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 또는 협박을 요구했던 기존 법리를 폐기함에 따라 피해자 입장에서는 보다 쉽게 강제추행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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