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동승…취했는데 차열쇠 주면 유죄, 그냥 타면 무죄

음주운전 동승…취했는데 차열쇠 주면 유죄, 그냥 타면 무죄

입력 2016-03-10 08:28
수정 2016-03-1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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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음주운전 도와야 처벌”…검찰, 동승자 처벌방안 만들기로

“억울한 피해자 없도록 세심한 검토·적용 필요”

검찰이 음주운전 차량 동승자에게도 형사책임을 강하게 묻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음주운전은 사망사고를 비롯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크지만 실제 동승자 처벌은 아예 없거나 미미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법원은 단순히 음주운전자와 함께 차에 탄 정도로는 죄가 없다고 본다. 차량 열쇠를 쥐여주는 등 음주운전을 도운 점이 입증돼야 유죄를 선고한다.

◇ 음주운전 방조·교통사고특례법 위반 등 적용

10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음주운전 동승자에게는 일단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단속 현장에서 동승자까지 법적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고 음주운전자 역시 벌금형 약식기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주운전이 사고로 이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취중운전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옆사람까지 피의자가 될 수 있다. 실제 음주운전 방조죄로 기소된 사람은 운전자가 사고를 낸 경우가 많다.

이모(38)씨는 작년 8월30일 진모(37)씨에게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를 빌려주고 자신도 조수석에 탔다. 운전면허는 둘 다 없었고 진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77%로 만취 상태였다. 진씨가 몰던 차는 신호를 기다리던 앞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조사과정에서 이씨가 같은 날 30분가량 운전대를 잡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씨에게는 도로교통법상 무면허운전에 진씨의 무면허·음주운전을 방조한 혐의가 추가됐다. 이씨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차 열쇠를 건넸다가 사망사고가 나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있다.

한모(50)씨는 2005년 5월 당시 17살이던 A양과 술을 마시고 자신의 포텐샤 승용차 열쇠를 줬다. 한씨도 함께 탔는데 사고로 A양은 숨졌다. 책임보험도 들지 않은 상태였다.

음주운전 방조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씨는 1심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1심은 “A양이 술에 취했고 운전면허도 없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량 열쇠를 줘 운전하도록 방조했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한씨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단순 동승자에게는 대부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유모(27)씨는 2014년 11월 혈중알코올농도 0.085% 상태로 운전하던 중학교 동창의 승용차에 동승했다가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혼자 귀가하려는데 동창이 굳이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조수석에 탔다. ‘호의동승’에 해당한다.

법원은 음주운전을 제지하지 않은 정도로는 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은 “방조의 고의가 있었거나 음주운전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역시 “최소한 상대방의 구체적 범행을 도와 용이하게 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검찰 항소를 기각했다.

돕지는 않았더라도 단순히 옆자리에 타거나 말리지 않은 점만으로 음주운전자와 똑같이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기관이 단순 동승자 처벌에 소극적이었을 뿐 음주운전자 조사 과정에서 얼마든지 적발해낼 수 있다고 본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의 단속 관행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음주운전 뿐만 아니라 사고의 결과까지 동승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집중 검토 중이다. 법적으로는 도로교통법상 위험운전치사상 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검찰은 현행법을 적극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

◇ 일본 판례 등 해외사례 참고…‘억울한 피해자’ 없어야

김수남 검찰총장은 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2011년 일본 사이타마현 지방재판소 판례를 제시했다. 당시 2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는데 법원은 동승자 2명에게 위험운전치사상 방조죄를 적용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총장은 음주운전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술을 판 식당 주인 역시 처벌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제 적용에는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다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재경 법원의 한 고위 법관은 “민사상 책임을 지는 것과 달리 형사처벌은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 문제”라며 “동승 행위에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법리적으로 판단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동승자가 처벌 대상이 되려면 객관적으로 본인이 운전을 해선 안될 상황이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또 음주운전자가 운전할 경우 사고가 날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묵인·감수한다는 고의(또는 미필적 고의)가 증명돼야 한다.

동승자가 음주운전자를 말릴 경우 음주운전의 위험성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만류하지 않고 동승했다고 해서 음주운전 자체의 불법성·위험성이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성립된 불법행위에서 동승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연합뉴스또 동승자를 방조죄로 처벌할 정도라면 동승 제안을 받고 이를 거절한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지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음주운전 불법행위가 곧 이뤄질 것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법규상 신고 의무는 없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음주운전 차에 동승할 것을 요구한 경우 하급자 입장에서 이를 적극 만류하거나 거부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억울한 피해자는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검토와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음주운전 동승자 처벌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처벌 강도는 어떤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해외 사례도 수집해 적절한 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필요하면 전문가와 시민의 여론을 조사해 국민 법감정에 맞는 처벌 기준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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