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사이다’ 사건, 할머니가 진범일까?

‘농약 사이다’ 사건, 할머니가 진범일까?

입력 2015-12-03 10:56
수정 2015-12-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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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부터 닷새간 국민참여재판 열려

지난 7월 14일 오후 2시 43분, 경북 상주시 공성명 금계1리 마을회관에 있던 60~80대 할머니 6명이 입에 거품을 물고 복통을 호소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마을회관 냉장고에 있던 드링크제 뚜겅으로 닫힌 사이다를 나눠 마신 직후였다. 2명이 숨졌고 4명은 중태에 빠졌다가 건강을 차츰 회복했다.
사이다에는 고독성 살충제 농약이 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실수가 아닌 고의성이 있는 범죄로 판단,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는 82세의 박모 할머니. 박 할머니는 농약 사이다를 마신 6명과 함께 마을회관에 있었으나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던 인물이다.

●수사기관이 내세운 증거들
1. 박 할머니 집 주변에서 발견된 자양강장제 병
경찰은 박 할머니 집 주변에서 병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을 찾아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자양강장제 병 속에 사이다 속 살충제와 같은 성분의 살충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살충제는 무색무취한 맹독성 농약으로 2012년 판매가 금지됐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자양강장제 병의 유효기간은 박 할머니 집에 보관 중이던 자양강장제 병의 유효기간과 같았다. 또 박 할머니의 옷 등 21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2. 사건 전후 박 할머니의 행적
살충제 사이다를 마신 신모(65) 할머니는 마을회관 안에서 쓰러진 다른 사람들과 달리 회관 밖으로 뛰쳐 나왔다. 이때 박 할머니도 신 할머니를 뒤쫓아 문 밖으로 나왔다. 마침 마을회관으로 들어오던 동네 주민이 이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고, 이어 남편인 마을 이장에게 알리려 집으로 갔다.
문 밖으로 따라나온 박 할머니는 119구급차가 마을회관 진입로로 들어서는 순간 구급차를 힐끗 바라보며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3분쯤 지나 구급차가 신 할머니를 태우고 마을회관 입구를 빠져나갈 때에는 회관 앞 계단에 걸터앉아 구급차 반대편 쪽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당시 나머지 5명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회관 안에 쓰러져 있었다. 이 장면은 119구급대 블랙박스에 찍혔다.
50여분이 지난 뒤에 마을회관에 들어가서야 이장이 나머지 할머니 5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검찰은 주변인 진술을 토대로 “사건 전날 화투놀이를 하다 다른 할머니와 싸운 것이 범행동기”라고 보고 있다. 박 할머니는 사건 당일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우회도로로 통해 마을회관에 갔다. 이 길을 따라가면 전날 자신과 다퉜던 할머니 집을 지나게 되는데 경찰은 박 할머니가 범행 대상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밖에도 검찰은 박 할머니가 수사 초기 거짓말탐지기 사용을 거부한 점, 검찰이 실시한 통합심리분석 결과에서도 ‘거짓 반응’이 나온 점들도 강조하고 있다.

●변호인의 반박
그러나 박 할머니가 직접 살충제를 사이다에 타는 장면이 찍힌 영상 등 직접 증거를 경찰과 검찰은 확보하지 못했다. 변호인 측은 검찰이 농약 투입 시기, 살충제 구입 경로 등의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점을 들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옷 등에 살충제 성분이 묻은 것은 쓰러진 할머니들 입의 거품을 닦아주면서 묻었다고 반박했다. 또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에 대해서는 “신 할머니를 따라나가 휴지로 입의 거품을 닦아준 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 거품을 닦아주면서 사람들이 곧 올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70년 가까이 한 마을에서 친하게 지낸 할머니를 단지 10원짜리 내기 화투를 치면서 싸운 일 정도로 살해하려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싸움을 했다는 것도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거짓 반응’과 관련해서는 피고인이 고령인 만큼 심리분석 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5일간 진행되는 국민참여재판
이번 사건에 대한 재판은 오는 7일부터 대구지법에서 5일간 진행된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2008년 1월 이후 가장 긴 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상하고 있다. 양측은 이미 580여건의 방대한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검찰이 수집한 자료만 3500여쪽에 달한다. 양측은 최초 신고자, 피해자, 마을 주민, 행동분석 전문가, 사건 수사 경찰관, 외부 전문가 등 모두 18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참여재판은 지방법원 관할 구역에 사는 만 20세 이상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게 된다.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과 양형 의견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선고에서 이를 참작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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