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론스타] ① ‘구세주’에서 ‘먹튀 자본’ 상징 전락

[ISD 론스타] ① ‘구세주’에서 ‘먹튀 자본’ 상징 전락

입력 2015-06-30 07:47
수정 2015-06-30 07:4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외환위기 당시 한국 기업 부도·파산 노려 ‘헐값 싹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전쟁을 펴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한국 기업 ‘사냥’은 외환위기 직후에 시작됐다. 범람하는 국내 부실채권을 싹쓸이한 론스타는 당시만 해도 국내 부동산·금융시장의 ‘구세주’로 불렸다.

그러나 15년 넘게 지나면서 그 구세주는 외국계 자본 가운데 ‘먹튀’ 논란의 상징이 됐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외환은행 불법 인수·매각 의혹이 불거졌지만 수조 원의 차익을 챙겨 한국을 무사히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5조원이 넘는 돈을 보상하라고 소송을 걸었다. 국민 혈세를 놓고 다투는 ISD가 미국에서 시작됐음에도 정부는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 부도·파산 냄새 맡고 한국 상륙

론스타는 1995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설립됐다. 텍사스 주의 별칭인 ‘외로운 별’(Lone Star)에서 이름을 따왔다. 설립 후 미국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를 맡아 수익을 거두며 명성을 날렸다.

한국에 눈을 돌린 것도 기업의 부도·파산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이 탈출하는 한국에서 론스타는 국내 부동산·기업 부실채권을 헐값에 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큰 이득을 본 론스타는 직접투자에도 눈을 돌렸다. 2000년대 들어 론스타는 저평가된 부동산과 기업을 사들였다. 현금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먹잇감이 됐다.

여의도 동양증권, SK증권 건물이 넘어갔다. 현대산업개발이 완공을 앞둔 강남구 역삼동 I-타워(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인수했다. 극동건설도 당시 론스타의 품에 안겼다.

2002년에는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당국에는 ‘다른 은행도 인수해 금융그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막판경쟁 끝에 하나은행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그래서인지 다음 목표인 외환은행에는 더욱더 집착했다.

◇ 경제관료 동원해 헐값 인수 의혹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설은 2002년께부터 흘러나왔다. 외환은행이 외환위기 때 생긴 부실자산으로 허덕이다 서서히 회복하던 시점이었다. 정부와 2대 주주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은행법상 론스타와 같은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다. 론스타는 극동건설, 스타타워, 미국 레스토랑 체인 등을 보유했다. 그러나 산업자본 일부를 빠뜨린 서류를 당국에 들이밀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만들어 인수 명분을 확보하려 했다.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적정 기준치(8%) 아래로 조작하는 수법이었다. BIS 비율이 낮으면 은행이 그만큼 부실한 것으로 여겨져 매각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론스타는 여러모로 관가에 접근했다. 실무책임자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경기고 동창 하종선 변호사를 로비스트로 썼다.

변 국장과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의 고교 동문인 살로몬스미스앤바니(SSB) 김모 대표도 로비 공세에 동참했다. SSB는 론스타의 재무자문사였다.

론스타의 제안을 수락한 관료들은 2003년 7월15일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10인 비밀회의’를 열고 론스타에 인수 자격을 주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외환은행의 연말 BIS 비율이 비관 전망을 따르면 5%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결론 내고 정부 의견으로 확정했다. 김석동 국장은 당시 ‘도장 값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로써 외환은행은 ‘외자 투입이 급히 필요한 부실은행’이 됐다. 동시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명분이 생겼다. 론스타는 결국 8월27일 외환은행 주식 50.5%를 1조3천여억원에 사들였다.

론스타의 인수자격을 놓고 논란이 일었지만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 되레 자찬했다. “금융계 최대 규모의 외자 유치”라며 “공적자금 투입 없이 정상화를 이뤘다”고 발언한 것이다.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투자 기피 우려를 불식했다”며 맞장구쳤다.

◇ 주가조작으로 외환카드도 손쉽게 흡수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기업가치를 단기간에 높이려고 칼을 빼들었다. 점포와 직원 수를 줄이고 주주에게 고배당을 했다. 남은 직원에게는 월급을 올려주며 내부 반발을 최소화했다.

론스타는 뒤이어 외환카드를 헐값에 흡수 합병할 계획을 세웠다. 외환카드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서 소액주주 보상 등 합병 비용을 줄이려는 주가조작 ‘작전’이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중단했다. 당시 2천억원의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던 외환카드는 결국 2003년 10월 고객들에게 현금서비스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외환카드 허위 감자설도 퍼뜨렸다. 감자를 하면 주주는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언론이 감자설을 보도하자 주가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그해 11월 중순 주당 6천700원가량에서 같은달 26일 2천550원 선으로 밀렸다.

외환카드 측은 외환은행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그러나 론스타는 이를 막고 11월 말 합병을 결의했다. 예고했던 감자는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론스타는 결국 2004년 외환카드를 손쉽게 흡수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