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청년포럼 참가차 방한…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 견학
“1943년에 웬 아저씨가 오더니 ‘나를 따라 일본에 가면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으로 가게 됐다. 끔찍할 정도로 배가 고팠다. 쓰레기통을 뒤진 적도 있다.”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가 빠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이 계속 논란이 되던 30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한국과 일본 청년 14명이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배봉기(1914∼1991)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영상을 보는 일본 젊은이 10명의 표정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1944년 29세 나이로 군 위안부가 된 배 할머니는 1973년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이날 모인 이들 가운데 일본인들은 일본 시민단체 ‘2015 한일관계재설정캠페인 실행위원회’가 마련한 한일청년포럼 참가차 최근 방한한 대학생 등 청년들이다.
배 할머니의 영상을 비롯해 군 위안소 지도, 일본인의 증언 수첩 등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일본 청년들에게 군 위안부의 실체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들은 삼삼오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며 꼼꼼히 필기하고 서로 의견을 나눴다.
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이같은 ‘실체적 증거’를 본 일본 청년들은 저마다 슬픔과 유감을 나타냈다.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환학생 사토 유코(23·여)씨는 “일본군이 위안소에 들어갈 때의 규칙 등 증거를 보면서 군 위안부 제도가 일본군의 ‘조직적 범죄’임을 알게 됐다”며 “단순히 ‘위안부’라는 말로는 부족한 거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오자키 마리코(34·여)씨는 “전시에 여성에 대한 강간이 국가에 의해 자행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일본에서도 이제 군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돼 많이 알고 있지만 정부가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날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석했다는 사토씨는 “대사관의 닫힌 철문을 보며 ‘과연 이 목소리가 일본까지 전달될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일본 내 목소리가 커지면 아베도 변하지 않을까. 시민의 목소리는 강하다”고 힘줘 말했다.
일본 청년들은 이날 박물관 견학에 앞서 오전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견학하며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한국인들이 겪은 고초를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사형장 지하와 시신 수습실 등이 풍기는 음습한 분위기에 눈을 크게 뜨고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수감자를 거꾸로 매단 채 양동이에 머리를 집어넣는 물고문을 재현한 모형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는 학생도 있었다.
좁은 감옥에 30명가량이 한 방에 수감되면서 공간이 비좁아 선 채로 잠을 청했다거나 양동이에 용변을 받아 처리했다는 역사관 측 설명을 들을 때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역사관 방문이 이날로 두 번째라는 대학생 나카무라 모모코(21·여)씨는 “처음 역사관을 찾았을 때 정말 무섭고 충격적이었던 느낌이 떠오른다”며 “이렇게 한국 학생들과 함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 서로 어려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 학생들은 이어 교육부 산하 역사왜곡 대응기구 동북아역사재단을 추가로 둘러보고서 저녁에는 한국 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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