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계속되는 입장 번복…노조 “전면파업도 불사”
부당해고를 당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기도한 신성여객 버스기사 고(故) 진기승씨의 죽음으로 시작된 전주 시내버스 노사갈등이 점차 악화하고 있다.사측은 협상과정에서 약속했던 보상문제와 부당해고 판결 항소 취하 입장을 뒤집었고,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는 이에 대응해 다음 주부터 ‘전면파업’까지 투쟁 수위를 올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주시가 초기부터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노사 양측은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노사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달아 2012년 7월 2일 이후 744일 만에 전체 전주 시내버스가 멈춰서는 ‘버스 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성여객 왜 자꾸 입장 번복하나
신성여객 노사는 지난 5일 전주시의 중재로 유족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책임자 처벌 등의 사안에서 잠정합의까지 갔다가 7일 돌연 입장을 번복했다.
신성여객은 7일 발표한 호소문에서 유족 보상과 책임자 처벌에 대해 기존 입장보다 후퇴한 협상안을 제시했고, 전주시 등 행정당국의 개입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후 10일 재개된 노사협상에서 신성여객 측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진씨의 ‘부당해고’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지 않고 고법 판결을 지켜본 뒤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측이 종전에 합의했던 약속을 계속해서 번복하는 이유는 쟁의절차 없이 지난 4월 30일부터 운행 거부에 들어간 노조에 대해 ‘법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성여객 측은 업무방해 방해 혐의로 공공운수노조 전북지부 지도부를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사측의 고소로 민·형사상 책임을 떠안게 된 노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노사갈등이 해결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관행이지만, 2010년부터 4년째 감정의 골이 깊어진 전주 시내버스 노사관계에서는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노사갈등이 계속되면 사측보다는 노조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면서 “엄격히 말해서 신성여객의 입장에서는 진씨의 죽음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노조는 업무방해에 따른 형사적 책임과 손해배상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노조 “노사갈등 배후는 버스운송사업조합”
공공운수노조는 노사 잠정합의가 깨진 배경에 전북지역 고속·시내버스 회사들로 구성된 ‘전북버스운송사업조합’을 지목하고 있다.
전주 시내버스 노사는 4년간 노사갈등을 반복하면서 한 번의 양보가 고스란히 피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전주 시내버스 노조는 전체 종업원 887명 중 강경파인 민노총(425명)과 온건파인 ‘한노총+국민노조’(462명)가 세력을 양분하고 있다.
실제 전주 시내버스 5개사 중 과반수를 넘겨 교섭권을 확보한 노조는 민노총 2개사(전일여객, 제일여객), 한노총 2개사(신성여객, 호남고속)로 비슷한 상황이다.
이번 사안에서 물러서면 노조의 주도권이 민노총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버스사업주들이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중교통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공공운수노조의 한 관계자는 “신성여객 사측이 실무진 협상까지 마친 뒤 갑자기 입장을 번복한 이면에는 다른 버스 사업주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북버스운송사업조합은 이번에 양보하면 사측에 비협조적인 민노총 세력이 커질 것을 염려해 잠정합의를 번복하라는 의견을 신성여객 측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면파업 가능성은
신성여객의 계속되는 입장 번복에 노조는 ‘전면파업’ 카드를 꺼내 들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일단 전면파업이 시작되면 사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파업 이후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과거 경험 때문에 쉽사리 전면파업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와 달리 전주시가 적극적으로 노사 중재에 나서는 시점에서 전면파업을 강행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신성여객 측이 계속해서 입장을 번복한다면 노조는 조만간 전면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면파업은 버스운행 전체가 멈추는 것이어서 운행률이 30% 정도 감소하는 부분파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 대체버스 투입 등 전면파업에 따른 비용부담도 크다.
버스 운행 중단으로 인한 불편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체버스 비용은 모두 시민이 떠안는 셈이다.
곽은호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 조직국장은 “지금까지의 협상 과정을 보면 사측은 전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사측은 전면파업이 시작돼도 영업손실을 보조금과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보전받기 때문에 큰 손실이 없어 시민 불편을 고려하지 않고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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