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만의 상봉’ 부친이 건넨 100만엔에 간첩누명

’42년만의 상봉’ 부친이 건넨 100만엔에 간첩누명

입력 2013-03-05 00:00
수정 2013-03-0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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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법정투쟁끝 재심 무죄판결…법원 “혈육의 정 차원”…

어느새 고희(古稀)가 지난 정모(75)씨는 30년 전인 1983년 8월의 하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 살 때 헤어진 아버지와 무려 42년 만에 처음 상봉한 감격스러운 날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직장 근무 때문에 일본으로 향했다가 해방 이후 귀국 시기를 놓쳐 수십 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아버지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날은 정씨가 이후 30년간 간첩 누명을 벗기 위한 법정 투쟁을 벌이게 만든 날이기도 했다.

일본 도쿄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산하 신용조합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가장 역할을 하던 정씨에게 생활비에 보태 쓰라며 일본돈 100만엔과 한 돈짜리 금반지를 건넸다.

그런데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아버지한테서 통일사업을 도우라는 지시를 받은 정씨가 공작금을 수수했다고 보고, 귀국한 그를 체포해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및 금품수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 신분으로 법령에 밝았던 터라 일본 방문 목적 등을 사전에 상세히 신고했던 정씨로서는 느닷없는 출근길 봉변이었다.

정씨는 수사 과정에서 50일간 불법 감금되기도 했다.

결국 1심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돼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투쟁 끝에 간첩 누명은 벗었지만, 금품수수가 유죄로 인정돼 198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정씨는 아버지가 ‘부자지간의 정’으로 생활비를 줬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간첩조작 사건이 횡행하던 당시 시대상황에서 무죄를 입증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재판 도중 일본에 있던 아버지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거듭된 비극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이내 유명을 달리했다.

사건 발생 29년 만인 지난해 정씨는 나머지 금품수수 부분의 누명을 벗고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어진 재심에서 서울고법 형사7부(윤성원 부장판사)는 “정씨의 금품수수 행위에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42년 만에 아들과 상봉한 아버지가 그동안 뒷바라지를 못한 아내와 자녀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한 마음에서 엔화는 고국에 있는 가족 생활비로, 금반지는 아내에게 전해달라며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정씨가 받은 액수가 공작금으로서는 적은 점도 고려하면 받은 금품이 혈육의 정에 기초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모두 끝나서 홀가분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자손들의 법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정리돼서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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