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노역자료 보존소 찾고 크로아티아·말레이 장관과 회동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추진과 관련해 본격적인 외교전에 뛰어들었다.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할 세계유산위원회가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윤 장관이 위원국들을 상대로 전방위 설득전에 나선 모양새다.
윤 장관은 13일(현지시간) 자그레브에서 베스나 푸시치 크로아티아 외교부장관과 회담했다고 외교부가 14일 전했다.
크로아티아는 세네갈, 카타르, 자메이카, 인도와 함께 세계유산위원회 부의장국이며, 한국 외교장관의 크로아티아 방문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이다.
윤 장관은 회담에서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추진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을 비롯해 그동안 두 차례에 걸친 한일간 협의, 대다수 위원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분위기 등을 전달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등재시기를 1850년에서 1910년으로 설정, 1940년대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과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든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푸시치 장관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크로아티아로서는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면서 “세계유산협약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한일 간 합의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크로아티아 방문 이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인 말레이시아의 아니파 아만 외교장관과 14일께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에서는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비중 있게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파 외교장관은 말레이시아의 이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수임에 따라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뉴욕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앞서 지난 12일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을 방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베를린 브리처 슈트라세에 있는 나치 강제노동 문서센터를 방문했다.
윤 장관은 한·독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독일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했다.
윤 장관이 방문한 문서센터는 과거 강제노동자 2천 명을 수용했던 숙소였으나, 현재는 일부가 독일 내 나치 강제동원의 역사 자료를 모아둔 곳으로 바뀌었다.
윤 장관의 이곳 방문은 부정적인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산업시설 등재 명분으로 내세운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의 이면에 조선인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우리 입장과 맞닿는 대목이다.
윤 장관은 관람을 마치고 방문록에 “2차대전 기간 강제노역 희생자,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며 미래로 향하는 독일 국민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이달 28일부터 독일 본에서 21개 위원국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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