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6·25전쟁영웅’ 댈리 미 육군준장

‘5월의 6·25전쟁영웅’ 댈리 미 육군준장

입력 2015-04-30 10:13
수정 2015-04-30 10:1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국가보훈처는 프랭크 댈리 미국 육군 준장을 ‘5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미지 확대
’5월의 6·25전쟁영웅’ 댈리 미 육군준장
’5월의 6·25전쟁영웅’ 댈리 미 육군준장 국가보훈처는 프랭크 댈리 미국 육군 준장을 ’5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보훈처 제공
1951년 5월 26일 밤, 중공군과 교전이 한창이던 경기도 가평의 홍종리 인근에서 댈리 중령이 이끄는 제213야전포병대대에 미군 제24사단 21보병연대를 포격 지원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포병부대를 경호하던 전투 병력이 적군을 봉쇄하기 위해 전진하면서 포병부대는 전투 병력의 보호 없이 홀로 남게 됐다.

4천 명에 달하는 중공군은 240명의 병력에 불과한 포대가 지키던 좁은 협곡을 돌파구로 삼고자 맹렬히 공격해 왔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전투는 흡사 백병전의 양상으로 전개됐다.

새벽까지 이어진 포화 속에서 협곡을 둘러싼 능선을 오르려고 시도했던 적군은 미군의 공격에 마침내 무릎을 꿇었고, 퇴각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대규모로 투항해 왔다.

350명의 적군이 전사하고 830명 이상이 생포되거나 투항하는 대기록을 남긴 이날의 전투에서 제213야전포병대대에서는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유타주 서밋 출신의 댈리 중령이 이끈 213대대는 모두 유타 주의 인근 마을에서 온 600명의 어린 병사들로 구성됐다.

파병 당시 85kg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1년 후 부대원에 대한 근심과 스트레스 때문에 67kg으로 줄었고 갈색이던 머리도 백발이 됐다. 그의 부대원 600명 전원은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유타주 주민들은 이를 두고 ‘가평의 기적’, ‘가평의 전설’이라고 부르며 해마다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