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인연

100년 인연

입력 2011-05-29 00:00
수정 2011-05-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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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제가 무척 꺼리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례(主禮)를 서는 일입니다. 나이도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가정적으로도 아주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종종 부탁(?)이 들어옵니다. 미안하지만 즉석에서 거절합니다. 조금이라도 여지를 보이면 두 번, 세 번 다시 부탁을 할 테고 그러다 보면 결국 ‘오죽했으면 나한테 이리 매달릴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 자물쇠를 풀게 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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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예외적으로 지난주에 주례를 섰습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호주 시드니에서. 관광은커녕, 3박 4일이라는 빠듯한 일정으로 1만km가 넘는 그 먼 곳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100년간의 약속’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랑 아버지인 축진재(祝振財) 형과의 깊은 인연(因緣) 때문이지요.

진재 형은 서울에서 태어난 화교입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까지만 다니고는 명동성당 앞 ‘성화장’이란 중국음식점에서 40년 넘게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살고는 있지만 한국어가 서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화교 후배들을 걱정했습니다. 후배들이 한국어를 보다 잘 익히는 데 <샘터>가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진재 형은, 14년 전인 1998년, 한성화교학교 앞으로 2097년까지 자그마치 100년간 <샘터> 정기구독을 신청한 것이지요. 그 후 호주로 이민을 가게 돼 자주 연락은 못 하지만, 집안끼리도 의형제 관계인 진재 형의 부탁만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의 무리한 일정 때문에 몸은 부대낍니다. 그래도 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처럼 형과 회포를 푼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끔씩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사그라지던 ‘100년간의 약속’을 다시 한번 지펴 올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발행인 김성구(song@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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