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도 놀란 그 감동! 그 울림!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17일, 삶과꿈<챔버오페라>싱어즈(대표 신갑순)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이올란타(Iolanta)>를 러시아의 아름다운 문화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대에 올렸다. 이번 공연은 러시아 대표 작곡가의 작품을 한국 지휘자와 성악가들이 러시아의 오케스트라·코러스와 협연하는 양국 합작무대를 통해 한·러 수교의 참뜻을 예술문화로서 꽃피웠음은 물론 러시아에 한국의 문화적 수준과 이미지를 한 단계 높여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림스키-코르사코프 오페라극장 1,700석을 가득 메운 청중과 러시아 예술가로부터 놀라움과 함께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무대, 그들이 보내준 기립박수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서울 음대 소프라노 김인혜 교수, 예술의전당 후원회 이종구 회장(이종구심장클리닉 원장), 음악평론가 이상만 선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상만: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10편의 오페라 중 마지막 작품인 <이올란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15세기 프로방스의 공주 이올란타가, 아버지 르네 왕의 보살핌과 부르고뉴의 기사 보데몬 백작의 목숨을 건 사랑의 힘, 그리고 무어인 의사의 신비한 치료로 결국 눈을 떠 세상을 보며 신의 은총을 찬미하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내용으로나 국민적 사랑을 받는 작품이란 점에서 우리나라 <춘향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인혜: 이올란타가 처음 한국에 알려진 건 신갑순 대표님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LG아트센터에서 신 대표님과 한국의 성악가들 넬릴 리 선생(주연)이 무대에 올린 게 처음이에요. 그게 아시아 초연이었죠. 2005년 한·러 수교 15주년 공연 때 모스크바에서 제가 주연을 맡아 두 번째 공연을 했고,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 됩니다.
이종구: 저는 이번 공연이 처음 보는 <이올란타>였어요. 그래서 러시아에 가기 전에 미리 보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통해 DVD를 검색해 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스토리만 공부하고 갔어요.

이종구: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에요. 그 이유는 아마도 다른 작품에 비해서 길이가 짧아서가 아닐까요? 길이가 짧은 작품의 경우 두 작품을 한 무대에서 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기에 <이올란타>는 또 9장으로 된 긴 단막오페라로 무대에 올리기 힘든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상만: <이올란타>는 차이코프스키가 만들었지만 모데스트, 그러니까 차이코프스키의 동생이 시나리오를 썼어요. 좀 길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동화같이 아름다운 단순한 내용이고, 아마도 모데스트가 음악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그랬나 싶기도 해요.
진행자: DVD도 구하기 힘든 작품이라 주역으로써 텍스트 부제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미 2004년 새 작품을 찾아내어 2004년에 러시아어 아시아 초연을 하면서 제작 기획 연출을 직접 시도한 신 대표의 도전 의식에 경의를 표합니다. 김 교수는 <이올란타> 주역으로 2005년 때 공연과는 어떻게 다르셨는지요.
김인혜: 처음 하는 공연이 아니라 그런 부담은 크지 않았어요. 2005년 모스크바에서 처음 공연을 했어요. 그때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극 중 제가 눈을 뜨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객석의 러시아 할머니들이에요. 가장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이번 공연에서 그때의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 이종구 선생님께서 못 찾아보셨다고 하는데 전 유투브를 통해 <이올란타> 공연 본 적이 있어요. 40~50년 전에 만들어진 더빙영화였어요. 재미있는 건 출연하는 배우와 노래하는 가수가 달랐다는 거예요.

이종구: 모든 공연이 그렇듯 가수는 어떤 공연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김인혜 교수님은 최고였어요. 러시아어를 모르는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던 힘, 그만큼 김인혜 교수님은 이올란타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어요.
진행자: 모든 무대장치를 한국에서 준비해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종구: 무대장치는 신갑순 대표님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것 같습니다. 모두 서울에서 공수되었는데 패브릭(천)으로 만들어져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컨테이너 한 대는 필요했을 분량이었으며, 그렇게 가져갔다 하더라도 설치하는 것도 문제가 됐을 겁니다. 저는 패브릭을 이용한 무대장치는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행자: 현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 주역 배우로써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김인혜: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컸어요. 기악은 말이 없지만 성악은 텍스트가 있잖아요. 음악 자체도 언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음악이 완성되지 않아요. 더 나아가 그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거기 있는 어떤 사람도 그냥 가수가 부르는 노랫말을 듣기 위해 온 사람은 없어요. 그 기대에 답을 줘야죠. 그래서 악기 주자들보다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어요. 악기 연주자들은 음악만 잘하면 되지만 아무리 음악을 잘해도 말이 거기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완전 실패한 가수가 되거든요. 또 그날은 초연을 했던 넬릴 리 선생님도 오셔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김인혜: 저희들한테 한국의 원정 응원단은 붉은악마들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신갑순 대표님은 그간 무리를 한 탓에 몸이 안 좋으셨고, 불편하신 중에 휠체어를 타고 와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셨어요.
이종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죠.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솔직히 ‘과연 될까? 더구나 백야축제 기간에’ 이런 걱정도 했어요. 공연 전 러시아 측에서는 “객석의 반이나 채울 수 있겠냐”고 신 대표에게 걱정하며 물었는데, 신 대표 역시 객석 문제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큰 공연장에 관객이 가득 찼어요. 솔직히 공연을 함께 준비했던 러시아 사람들도 깜짝 놀랐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 많은 러시아 청중들을 모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던 우리 음악가들의 실력이란…. 그 감동은 우리나라 많은 공연장을 돌며 느꼈던 감동과는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인 게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김인혜: 우리나라 음악가의 위상이 좋아져 그쪽에서 우리를 초대했다고 보지만, 신갑순 대표의 일 년 간의 교섭과 노력·집념으로 이뤄낸 이번 행사가 양 국가 간의 문화수교 의미에 크게 부응했고, 만족할 만한 공연을 올릴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너무 기쁩니다. 특히 전 처음 모스크바 공연에서 제 노래를 듣고 울었던 분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에 ‘러시아 사람처럼 느끼게, 아니 러시아 사람보다 더 예쁘게 노래해 보자’며 더욱 열심히 연습에 임했어요. 러시아인이 아니기에 어떤 선입견도 없이 더 솔직하고, 순수하게 ‘이올란타’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이번 공연에서 관객에게 받은 느낌은 아무도 눈도 꿈쩍 안 한다는 느낌이었어요. 2층까지 가득 메운 모든 관객들이 조금의 미동도 없이 저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상만: 이번 공연에 참석하지 못한 게 참 아쉽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원에서 공연을 하고 청중들의 환호를 받는 우리 음악가들의 모습을 직접 보았을 텐데요.
이종구: 저는 우리나라 음악가들의 공연에 빠진 러시아인들을 곁에서 지켜 봤어요.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음악가들의 높은 위상에 놀라워했습니다.
진행자: 끝으로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올려진 이번 <이올란타>의 가장 큰 결실은 무엇일까요?

이종구: 백야축제에 세계의 많은 별들 중 이렇게 많은 한국 음악인들이 초청을 받은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이 축제에 초청 받은 외국 오케스트라는 서울시향과 베네수엘라의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뿐이며, 마애스트로 백건우와 한국의 피아노 영재 임주희 특히 한국의 음악가들이 단체로 출연했던 삶과꿈 <챔버오페라>싱어즈의 <이올란타> 공연은 그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러시아의 음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음악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상만: 우리 지휘자가 러시아 사람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우리 성악가 출연자들을 러시아 사람들의 합창이 돕는, 협연을 러시아 본바닥 무대에서 우리가 해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타국의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 문화의 저력과 진실을 이해하고 본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공연을 했다는 것에 대해 그들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을 겁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한·러 수교 20주년 특별 초청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외국의 오케스트라가 ‘아리랑’ 앙코르 공연을 한다고요. 그 얼마나 가슴 뜨거운 일입니까.
저는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과 러시아 사람들이 문화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러시아어 <이올란타>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삶과꿈 <챔버오페라>싱어즈에 축하를 보내며, 오늘 참석해 주신 세 분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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