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를 떠받친 중추 노비들에 의해 굴러간 ‘朝鮮’

정치와 경제를 떠받친 중추 노비들에 의해 굴러간 ‘朝鮮’

입력 2013-03-16 00:00
수정 2013-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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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비들/김종성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행정도 상당 부분 노비들에 의해, 수공업 제품의 생산도 노비들에 의해, 거기다 농업생산 역시 상당 부분 노비들에 의해 이뤄졌으니, 조선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노비들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였던 셈이다.”

법적 신분이 좀 얄궂을 뿐, 노비는 정치와 경제를 떠받치는 중추였다는 것이다. 단순히 하부구조나 토대라는 의미를 넘어 실질적 운영자였다는 설명이다. 조선의 신분제가 비교적 너그럽다고는 하지만, 이런 진술은 조금 당황스럽다.

이유는 딱 하나, 양반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당신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말해보라면 누구나 다 자기는 양반이었을 것이라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래도 예전엔 ‘망국의 책임’이라도 물었던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우리 조상이라고 양반의 향취를 무척 강조하다 보니 이런 로망은 더 깊어진다. ‘조선 노비들’(김종성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은 이런 로망을 깨는 데 도움된다.

저자는 시 쓰고 책 외워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진출한 양반들 대부분은 아무런 실무적 능력이 없었다고 딱 잘라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철학자나 문학가”인 사람들이 뭘 알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면 국가는 대체 어떻게 굴러갔다는 말인가. 저자는 관리(官吏)라는 말에서 관(官)원과 이(吏)원을 구분한다. 관원은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료 생활을 시작한 문관들이다. 이원은 ‘서리나 아전 혹은 아역’으로서 문서를 다루는 일에서부터 단순히 심부름하는 잡일까지 다양한 일에 종사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노비였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관원이 실무를 모르니, 진짜 업무는 노련하고 경험 많은 이원들 손에 떨어졌다. 조선은 엄연한 유학의 나라인데 정치는 서리들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탄식하는 남명 조식의 상소문이 선조실록에 등장하는 이유다. 남명 조식이 누구던가. 이기론 논쟁이 벌어지자 사림이 기껏 정권을 잡아서 한다는 짓이 엉뚱한 탁상공론이냐고 비판한 인물이다.

수십 명의 양반 제자들을 거느렸던 노비 문인 박인수, 노비라는 굴레를 벗고 중앙정부 관료로 활약하는 반석평과 김의동, 양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노비 시인 백대붕과 유희경 등 구체적 인물 얘기도 무척 흥미롭거니와, 구체적 인물 얘기 와중에 노비 제도의 기원, 법적 기준, 노비 거래 가격, 추노의 문제 등도 녹여뒀다. 무엇보다 유학 이념에 따라 배정된 직역으로 구성된 전근대국가 조선의 도덕경제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1만 4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3-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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