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에 올린 ‘청소년들의 자화상’

무대위에 올린 ‘청소년들의 자화상’

입력 2014-05-19 00:00
수정 2014-05-1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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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Ⅱ’

햄스터 우리만 있을 뿐 무대 위에 햄스터는 없다. 한데 그것이 갈등의 기폭제가 된다. 연극 ‘햄스터 살인사건’(극작 허선혜·연출 최여림)은 유쾌한 듯하지만 가볍지 않고, 통쾌하지만 씁쓸하다. 죽었지만 죽지 않고,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시선과 사고를 흡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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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모텔 방에 햄스터 우리를 손에 든 남학생과 여학생이 있다. 보호와 강요의 틀 속에서 움직였을 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떠올린 것은 안타깝게도 ‘멋진 죽음’이다. 그 와중에 배관공이 느닷없이 욕실을 고치러 모텔 방에 들어왔다. 배관공의 눈에 띈 것은 ‘모텔 방에 있는 청소년들’이 아니라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다. 굼뜨게 수리하더니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채 담배 심부름을 시키면서 연장자의 위세를 부린다. 여학생의 신고로 방에 들어온 모텔 여주인도 다르지 않다. 교복 입은 학생들을 모텔 방에 들여보낸 ‘어른’이면서 “눈 똑바로 뜨고 대든다”며 어쭙잖은 행세를 한다.

어른과 다툼을 벌이다가 여학생이 창문으로 몸을 던지고, 엉겁결에 배관공이 우리를 도망친 햄스터를 밟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고작 햄스터 한 마리 때문”에 ‘일개 고등학생일 뿐’인 남학생의 분노가 폭발하는가 싶더니, 경찰인 아버지에게 훔친 ‘총 한 자루’로 지배관계를 역전시킨다. 이후 시시각각 진실과 거짓,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다. 논리적으로 따지려 들면 서사의 연결고리가 헐겁다 못해 끊어졌다고 할 만한데도 이음매 없이 자연스럽고 매끈하게 극을 이끌어낸다. 서사의 끊어진 고리는 상상력으로 채우면 된다는 듯. 국립극단은 “기상천외한 유머, 발칙한 화법과 시선으로 청소년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부조리함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오는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공연하는 ‘햄스터 살인사건’은 국립극단이 준비한 ‘청소년극 릴-레이Ⅱ’의 첫 번째 작품이다. ‘청소년극 릴-레이’ 시리즈는 청소년극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를 확장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선보인 프로그램이다. 문제의식과 완성도를 모두 잡는 작품들을 엄선했다.

‘햄스터 살인사건’에 이어 30일부터 6월 7일까지 같은 공연장에서 ‘옆에 서다’(극작 박찬규, 연출 김수희)가 올라간다.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2013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의 선정작으로 지난해 낭독공연까지 실연했다. 청춘의 불안한 일상과 심리를 밀도 있게 그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쓰고 연출한 ‘비행소년 KW4839’(6월 13~21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청소년들과 현장 예술가들이 만나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청소년 예술가 탐색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무대화하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1만~2만원. 1688-5966.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2014-05-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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