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竹島)와 송도(松島)가 조선 부속으로 돼 있는 시말(始末)>
송도는 죽도의 인도(隣島)로서 송도의 건에 부해서는 이제까지 게재된 서류도 없다. 송도의 건에 부해서 원록도후(元祿度後)는 잠시 조선으로부터 거류를 위해 차견(差遣)한 바 있다. 당시는 이전과 같은 무인(無人)으로 돼 있다.
<지령안(指令按)>
품의한 취지의 죽도 외 일도(一島)의 건에 대해 본방(本邦)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심득(心得)할 것.”
19세기 후반의 공문서다. 죽도(독도)와 송도(울릉도)가 조선의 부속섬이 분명하고 일본과 관계가 없으니 그리 알라는 내용. 조선과 일본 중 과연 어느 나라 문서일까? 놀랍게도 일본 메이지정부의 공식 지령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방’은 일본을 뜻한다.
메이지정부의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은 1869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속으로 돼 있는 시말’을 지령으로 내리면서 외무성 관리들에게 복명토록 한다. 일본 정부 스스로 독도의 조선 부속령임을 확인한 실증문서다.
일본 내무성은 1877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곳이라는 지령문을 또다시 보낸다. 태정관은 그해 울릉도와 독도는 무관한 곳이니 일본 지적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지시한다. 당시의 일본 최고기관이 내린 결론이자 지령이니 이보다 더 분명한 문서가 어디 또 있겠는가.
이뿐 아니다.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 중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마네현의 문서 ‘은주시청합기(隱州視廳合記)’ 역시 울릉도와 독도는 자신의 영토인 은주(隱州)의 경계 밖에 있으므로 일본 땅이 아니라고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1667년의 일이다.
일본정부가 지난 7일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를 확정 공개해 한일간 외교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앞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기존의 주장을 더욱 강화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편입한다는 1905년 각의 결정 등의 자료를 줄줄이 내놨다.
일본정부가 독도가 자국령이라고 주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흐름은 기존보다 훨씬 더 도발적이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은 이번 외교청서에서 독도가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했다. 메이지정부 등 과거에 자국이 발표한 지령문과 결정문에 대해선 깡그리 모르쇠하는 낯두꺼움을 보인다.
일본이 이같이 주장하는 배경에는 조선의 공도(空島)정책이 있다. 왜구의 출몰로 골머리를 앓던 조선정부는 대부분의 섬을 무인도로 버려두는 공도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울릉도, 독도는 물론 완도, 진도 등도 빈 섬으로 버려두게 된다. 이 공도정책은 왜구 출몰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고육책이었던 것. 역(役)을 피해 섬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쇄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영유권 포기가 결코 아니었다는 얘기다.
공도정책이 공식 선포된 것은 세종 20년인 1438년. 이후 1884년까지 450여 년간 상당수의 섬들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됐다. 그런 가운데서도 울릉도 등 동해의 섬들은 반역을 꿈꾸는 자들이나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하나의 이상향이 돼간다. 또한 일본인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육상과 해상 자원을 마구 반출해간다. 이에 조선은 고종 19년인 1882년에 이규원을 울릉도 감찰사로 임명하고 이듬해 울릉도에 개척농민들을 입도시킴으로써 오랜 해금(海禁)정책을 풀게 된다.
이때 들어온 농민들은 동해안의 강원도민이나 경상도민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들이 주류였다. 이들은 전라도에서 먼바다를 항해해 울릉도에 상륙했던 것. 이들 전라도 사람은 돌로 이뤄진 지금의 독도를 ‘독섬’이라고 불렀는데 ‘돌’의 전라도 발음이 바로 ‘독’이다. 이후 섬의 명칭은 ‘돌섬’→’돌도’→’독도’의 음운 변천과정을 거친다. 다시 말해 대나무가 전혀 자랄 수 없는 생태여건의 일본식 이름 ‘다케시마(竹島)’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다. 이보다 훨씬 앞서 1846년에 김대건 신부가 그린 ‘조선전도’에도 울릉도 동쪽에 독도가 선명하게 표기돼 있다.
조선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독도를 ‘공식적으로’ 영토에 편입시킨 것은 1900년이었다. 당시 대한제국 관보는 “울릉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라는 칙령을 공포한다. 백 보, 천 보 양보하더라도 이 칙령발표는 시마네현이 고시를 통해 자국령으로 독도를 편입시킨 1905년보다 앞선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관계가 명약관화함에도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끈질기게 펴는 데는 미국정부의 책임도 있다.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인 미국은 반공주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반일정책을 180도 바꿔 친일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독도를 분쟁 가능성이 큰 회색지역으로 남겨놓은 것. 역학관계상 미국의 지원을 암암리에 받는 일본이 걸핏하면 국제법을 들먹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1946년 6월, 연합국최고사령부는 ‘SCAPIN 677호’에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다고 명기했으나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영토조항에서 독도를 그만 빠뜨리고 말았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독도를 해상폭격연습지를 삼으며 무차별로 훼손한 바 있다. 그 사이에 일본은 노골적으로 독도 수역을 침범하곤 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입장을 유보한 채 모르쇠로 일관한다. 독도라는 명칭이 아닌 ‘무인도’라는 의미의 ‘리앙쿠르 암’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명칭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이 붙여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독도 문제 전문가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미국 관리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한 바가 한번도 없다”며 “앞으로도 미국이 독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주리라고 믿는다면 너무나 순진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독도가 한국령임이 분명함에도 일본이 시시때때로 영토 주장을 펴 도발적 책동을 벌이는 것은 유감을 넘어 언어도단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볼 때 독도는 울릉도의 지척이나 다름없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직선거리는 88km인 반면, 독도에서 일본 오키제도까지는 무려 159km나 떨어져 있다. 울릉도의 산자락에 올라 바라보면 선명히 들어오는 섬이 바로 독도. 일본 쪽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난망할 일이다. 한국의 땅 독도가 일본의 견강부회에서 자유로운 날이 하루바삐 오길 바란다.
연합뉴스
송도는 죽도의 인도(隣島)로서 송도의 건에 부해서는 이제까지 게재된 서류도 없다. 송도의 건에 부해서 원록도후(元祿度後)는 잠시 조선으로부터 거류를 위해 차견(差遣)한 바 있다. 당시는 이전과 같은 무인(無人)으로 돼 있다.
<지령안(指令按)>
품의한 취지의 죽도 외 일도(一島)의 건에 대해 본방(本邦)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심득(心得)할 것.”
19세기 후반의 공문서다. 죽도(독도)와 송도(울릉도)가 조선의 부속섬이 분명하고 일본과 관계가 없으니 그리 알라는 내용. 조선과 일본 중 과연 어느 나라 문서일까? 놀랍게도 일본 메이지정부의 공식 지령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방’은 일본을 뜻한다.
메이지정부의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은 1869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속으로 돼 있는 시말’을 지령으로 내리면서 외무성 관리들에게 복명토록 한다. 일본 정부 스스로 독도의 조선 부속령임을 확인한 실증문서다.
일본 내무성은 1877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곳이라는 지령문을 또다시 보낸다. 태정관은 그해 울릉도와 독도는 무관한 곳이니 일본 지적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지시한다. 당시의 일본 최고기관이 내린 결론이자 지령이니 이보다 더 분명한 문서가 어디 또 있겠는가.
이뿐 아니다.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 중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마네현의 문서 ‘은주시청합기(隱州視廳合記)’ 역시 울릉도와 독도는 자신의 영토인 은주(隱州)의 경계 밖에 있으므로 일본 땅이 아니라고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1667년의 일이다.
일본정부가 지난 7일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를 확정 공개해 한일간 외교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앞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기존의 주장을 더욱 강화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편입한다는 1905년 각의 결정 등의 자료를 줄줄이 내놨다.
일본정부가 독도가 자국령이라고 주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흐름은 기존보다 훨씬 더 도발적이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은 이번 외교청서에서 독도가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했다. 메이지정부 등 과거에 자국이 발표한 지령문과 결정문에 대해선 깡그리 모르쇠하는 낯두꺼움을 보인다.
일본이 이같이 주장하는 배경에는 조선의 공도(空島)정책이 있다. 왜구의 출몰로 골머리를 앓던 조선정부는 대부분의 섬을 무인도로 버려두는 공도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울릉도, 독도는 물론 완도, 진도 등도 빈 섬으로 버려두게 된다. 이 공도정책은 왜구 출몰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고육책이었던 것. 역(役)을 피해 섬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쇄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영유권 포기가 결코 아니었다는 얘기다.
공도정책이 공식 선포된 것은 세종 20년인 1438년. 이후 1884년까지 450여 년간 상당수의 섬들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됐다. 그런 가운데서도 울릉도 등 동해의 섬들은 반역을 꿈꾸는 자들이나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하나의 이상향이 돼간다. 또한 일본인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육상과 해상 자원을 마구 반출해간다. 이에 조선은 고종 19년인 1882년에 이규원을 울릉도 감찰사로 임명하고 이듬해 울릉도에 개척농민들을 입도시킴으로써 오랜 해금(海禁)정책을 풀게 된다.
이때 들어온 농민들은 동해안의 강원도민이나 경상도민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들이 주류였다. 이들은 전라도에서 먼바다를 항해해 울릉도에 상륙했던 것. 이들 전라도 사람은 돌로 이뤄진 지금의 독도를 ‘독섬’이라고 불렀는데 ‘돌’의 전라도 발음이 바로 ‘독’이다. 이후 섬의 명칭은 ‘돌섬’→’돌도’→’독도’의 음운 변천과정을 거친다. 다시 말해 대나무가 전혀 자랄 수 없는 생태여건의 일본식 이름 ‘다케시마(竹島)’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다. 이보다 훨씬 앞서 1846년에 김대건 신부가 그린 ‘조선전도’에도 울릉도 동쪽에 독도가 선명하게 표기돼 있다.
조선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독도를 ‘공식적으로’ 영토에 편입시킨 것은 1900년이었다. 당시 대한제국 관보는 “울릉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라는 칙령을 공포한다. 백 보, 천 보 양보하더라도 이 칙령발표는 시마네현이 고시를 통해 자국령으로 독도를 편입시킨 1905년보다 앞선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관계가 명약관화함에도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끈질기게 펴는 데는 미국정부의 책임도 있다.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인 미국은 반공주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반일정책을 180도 바꿔 친일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독도를 분쟁 가능성이 큰 회색지역으로 남겨놓은 것. 역학관계상 미국의 지원을 암암리에 받는 일본이 걸핏하면 국제법을 들먹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1946년 6월, 연합국최고사령부는 ‘SCAPIN 677호’에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다고 명기했으나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영토조항에서 독도를 그만 빠뜨리고 말았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독도를 해상폭격연습지를 삼으며 무차별로 훼손한 바 있다. 그 사이에 일본은 노골적으로 독도 수역을 침범하곤 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입장을 유보한 채 모르쇠로 일관한다. 독도라는 명칭이 아닌 ‘무인도’라는 의미의 ‘리앙쿠르 암’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명칭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이 붙여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독도 문제 전문가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미국 관리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한 바가 한번도 없다”며 “앞으로도 미국이 독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주리라고 믿는다면 너무나 순진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독도가 한국령임이 분명함에도 일본이 시시때때로 영토 주장을 펴 도발적 책동을 벌이는 것은 유감을 넘어 언어도단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볼 때 독도는 울릉도의 지척이나 다름없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직선거리는 88km인 반면, 독도에서 일본 오키제도까지는 무려 159km나 떨어져 있다. 울릉도의 산자락에 올라 바라보면 선명히 들어오는 섬이 바로 독도. 일본 쪽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난망할 일이다. 한국의 땅 독도가 일본의 견강부회에서 자유로운 날이 하루바삐 오길 바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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