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플레이’하다

청춘을 ‘플레이’하다

입력 2011-06-21 00:00
수정 2011-06-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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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메이트’ 데뷔기 담은 음악영화 ‘플레이’ 23일 개봉

2009년 1월 음악영화 ‘원스’로 유명해진 프로젝트 밴드 ‘스웰시즌’의 내한공연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버스킹(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공연)을 펼친 무명 밴드가 ‘스웰시즌’의 글렌 핸서드 눈에 띄어 즉흥적으로 특별출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이 된 것. 그리고 그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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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진 속 표정만으로도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플레이’의 남다정(오른쪽부터) 감독과 주연을 맡은 모던록 밴드 메이트의 정준일, 이현재가 그랬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때로는 사진 속 표정만으로도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플레이’의 남다정(오른쪽부터) 감독과 주연을 맡은 모던록 밴드 메이트의 정준일, 이현재가 그랬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무명 밴드의 영화 같은 첫 무대까지의 이야기

3인조 모던록 밴드 ‘메이트’의 결성 이전부터 데뷔까지를 담은 음악영화 ‘플레이’(23일 개봉)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9년 10월쯤 제작사의 제안을 받은 남다정(31) 감독은 연습실과 공연장으로 멤버들을 쫓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세공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청춘들이 속을 다 내보이기엔 길지 않은 시간.

6개월 만에 나온 첫 시나리오는 그들의 얘기를 온전히 담지 못해 폐기했다. 1년이 지나고 비로소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영화에 극적 사건이나 아찔한 반전은 없다. 주인공들은 청춘의 동의어처럼 박제화된 패기나 열정과도 거리가 멀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미숙한 탓에 끊임없이 머뭇거린다. 모든 걸 설명하지도 않는다. 여백을 채우는 건 그들의 음악이다.

남 감독과 두 주연배우 정준일(28·건반 보컬), 이현재(23·드럼)를 지난 13일 서울 계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또 다른 멤버 임헌일(28·기타 보컬)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남 감독은 “영화사 제안을 받기 1주일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처음 봤다. 언젠가 음악영화를 한 편 하고 싶었던 데다 또래의 고민을 담을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남 감독은 3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공모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자신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숱한 밤을 지새운 ‘메이트’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고 느낀 것.

처음 영화 얘기를 들었을 때 정작 ‘메이트’는 시큰둥했다. 정준일은 “처음에는 동의를 안 했다. 무명시절을 딛고 앨범을 막 냈던 터라 음악에 충실하고 싶었다. 뭔가를 얻으면 다른 일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현재 역시 “우리 같은 신인 밴드를 영화로 만들어 뭐 하느냐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 앨범을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즈음은 ‘좋아서 만든 영화’(2009),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2010), ‘조금만 더 가까이’(2010) 등 인디음악 뮤지션을 내세운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정준일은 “보통 음악영화라면서도 음악은 곁가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공감하기 어렵다.”면서 “가난한 밴드 지망생들이 배를 곯고 밴드를 결성하고, 구성원들이 갈등을 겪다 결국 성공한다는 식의 판에 박은 기승전결은 피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비전문 배우와 신인감독의 조합이라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준일은 “내가 첫 촬영이었는데 전혀 준비를 안 했다. 의상 정도만 준비했다.”면서 “뭣 모르고 과도하게 설정하면 영화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아찔한 반전·극적인 기승전결은 없어

가장 열심히 준비한 이는 임헌일이라는 게 감독과 동료들의 증언이다. 이현재는 “헌일이 형은 상대 여배우(정은채)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면서 “상대가 전문 배우라고 해도 너무 밀리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대변했다. 임헌일은 유일하게 수줍은 키스신을 찍은 ‘배우’다.

막상 완성품을 보고난 뒤에는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남 감독은 “되게 부끄럽다. 발가벗고 무대 위에 혼자 선 느낌”이라면서도 “이 친구들의 모습을 오롯이 담은 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정준일은 “재밌었고 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내 연기를 보면 왜 저것밖에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재는 “지금은 어색하고 창피하지만 영화를 생각하면 언제든 초심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거의 2년을 아옹다옹(?)했으니 정도 든 눈치다. 남 감독이 “언니(영화평론가 남다은)가 영화를 보더니 ‘니가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라고 말하자, 내내 말을 아끼던 시니컬한 이미지의 정준일이 치고 들어왔다. “쓱 보면 감독님 외모가 미녀는 아니고, 시크한 프랑스 여자 같은데 술 마시면 낭만적이고 소녀 같은 면도 있다.”

남 감독은 “쉽게 친해지는 성격들은 아닌데 지금 보면 흐뭇하다.”며 ‘수습’에 나섰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것은 남 감독이나 ‘메이트’나 마찬가지일 터. 남 감독은 “1930년대 신여성의 치명적 사랑을 다룬 본격 치정영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면서 “나중에 결혼하면 힘들 테니까 지금 찍어야 한다.”며 웃었다. 정준일은 “‘메이트’의 음악에서 록의 색깔을 덜어낸 솔로 앨범이 늦어도 가을에는 나올 것 같다.”면서 “내 음악을 제일 잘 아는 (이)소라 누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앨범 나오고 공연 몇 번 하다가 연말쯤 군대에 가야 한다. 더는 연기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각 같은 외모(미국인 할아버지를 둔 혼혈 3세)로 데뷔 전부터 모델 생활을 병행했던 이현재는 “재즈 세션도 하고 모델도 좀 할 것 같다.”면서 “연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란 게 뻔하지 않겠나.”라며 고개를 젓는다.

멤버들의 군 복무로 3년쯤은 ‘메이트’ 활동이 어렵다. 팬들은 이후가 궁금할 법하다.

정준일은 “연인관계도 그런데 하물며 밴드 멤버끼리 영원을 약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팀을 유지하려고 음악을 하는 게 아니고 음악을 위해 팀이 존재한다. 열정이 있다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재도 “각자 영역을 터치하지는 않는다. 메이트로는 언제든 뭉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1-06-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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