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보다 결제 비중 등 위안화 위상 급등
올해 국제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 위안화를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하느냐다.여기에 포함되면 위안화가 명실상부하게 ‘빅리그’에 진입하면서 바야흐로 ‘레드백’(redback·위안화)과 ‘그린백’(greenback·미국 달러화)의 본격 경쟁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런민비(人民幣·RMB, 위안화의 공식 명칭)의 위상이 SDR 통화 바스켓에 포함될 정도로 높아졌느냐는 문제뿐 아니라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나 금융시장의 질서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까지 결부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결론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문제가 논의된 2010년 이후 중국이 일본을 완전히 제치고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데다 위안화 결제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점을 고려할 때 당연히 SDR 통화 바스켓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중국 환율 정책의 불투명성 등을 지적하면서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로서도 대 중국 무역 규모나 위안화 보유액 등으로 볼 때 위안화가 포함되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과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위안화 위상, 5년 전과 비교하면
IMF가 5년 전인 2010년 11월 SDR 구성 통화에 위안화를 넣지 않기로 한 이유는 자유태환(주요 통화와 자유롭게 교환하는 것)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IMF는 당시 “위안화가 아직은 SDR 바스켓에 편입될 만큼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바꿀 수 있는(freely usable or convertible) 통화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위안화 거래 규모가 점차 늘어나고 있음에도 중국 이외 지역에서는 사용 빈도가 낮아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IMF는 SDR 구성 통화로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등 4종을 유지하면서 달러화와 엔화 비중을 다소 낮추고 유로화 비중을 소폭 높이는 미세 조정만 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당시 IMF 총재는 이듬해 2월 위안화 등 개발도상국 통화를 SDR 바스켓에 편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서 이를 추진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그러나 이후 5년간 중국의 경제 규모와 국제 거래에서의 위안화 결제 비율 등은 확연하게 높아졌다.
2010년 일본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8천억 달러로 엇비슷한 규모였으나 2013년 기준으로 중국은 9조1천억 달러로 미국(16조8천억 달러)에 이어 2위 지위를 확고하게 한 반면 일본은 4조8천억 달러로 오히려 줄어들면서 중국보다 훨씬 뒤처진 상태다.
위안화의 국제 결제 비중도 급상승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9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12월 위안화를 통한 국제 결제 비중이 2.17%를 차지해 5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종전 7위에서 캐나다달러와 호주달러를 제친 것이다.
달러화(44.64%), 유로화(28.30%), 파운드화(7.92%)에 이어 4위인 엔화(2.69%)와의 격차가 0.52%포인트에 불과해 엔화마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무역에서 위안화로 결제되는 비율도 2010년 2%에서 지난해 20%로 급등한 데 이어 2020년에는 35%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또 28개국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했으며 50여 중앙은행이 위안화를 사용하거나 외환보유액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상품·서비스 무역액 및 결제 비중 등의 지표로 볼 때 위안화가 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각국 외환보유액 가운데 위안화의 비중은 3% 미만으로 미국 달러화(61%)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주카 필먼 스탠더드차터드뱅크 이사는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중국이 세계 무역의 11%를 차지하고 위안화 위상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IMF가 이 화폐를 ‘빅 클럽’으로 공식 인정할지를 영원히 미룰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외적 요소도 변수…미국이 ‘칼자루’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세계 2위 경제 규모에 걸맞게 높이는데도 적극적이다.
따라서 5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기회에 SDR 통화 바스켓에 ‘위안화 밀어넣기’를 강력하게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아울러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경쟁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하는 등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국제 금융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GDP 규모 등에서 ‘넘버2’ 자리를 내준 일본은 중국 견제 차원에서 위안화 편입을 탐탁지 않게 여길 것으로 관측된다.
위안화가 포함되면 가뜩이나 엔화 약세 현상과 겹쳐 SDR 바스켓 통화별 가중치에서 위안화에 밀릴 공산이 있는데다 국제 결제 비중에서도 4위 자리를 빼앗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화폐 전쟁에서도 중국에 지는 꼴이 된다.
유럽은 중국 편을 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각국의 대 중국 무역 규모와 위안화 결제 비중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 5년 전 위안화의 SDR 바스켓 편입에 반대했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위안화를 보유 외환에 포함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제3세계 등 다른 경제권도 중국에 딴죽을 걸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의 결정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평가다.
IMF의 주요 의사나 정책 결정 때는 회원국 쿼터(출자할당액)별로 총투표수의 8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미국이 19.3%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율은 IMF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의 크기, 다시 말해 투표권을 좌우하기 때문에 최소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국임에도 IMF 지분율이 4%에 불과하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했음에도 미국 의회가 승인하지 않고 있는 IMF 구조개혁안에 따르더라도 미국의 지분율은 17.4%로 이전보다 1.9%포인트 낮아지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 지위를 유지한다.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미지수다.
일단은 유보적 자세로 IMF 이사회가 작성하는 보고서를 보고 나서 의사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내에서는 위안화를 SDR 바스켓에 편입시킴으로써 외환시장을 개혁·개방시켜야 한다는 찬성론과 중국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고 ‘환율 조작’까지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반대론이 팽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주석이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될 시점인 올해 9월 미국을 국빈방문할 예정이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득실은
위안화가 SDR 통화 바스켓에 포함되면 우리나라에는 “도움이 된다”거나 “적어도 나쁠 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 중국 무역 비중이 크며 최근 원·위안화 직거래가 성사되고 통화 스와프 계약 만기도 2017년 10월 10일까지 연장되는 등 위안화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다.
반면 SDR 바스켓에 위안화가 편입되건 않건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본적으로 SDR 바스켓은 IMF 이사회가 상품·서비스 무역 규모와 교환성 통화 요건을 고려해 결정하며 한국도 이런 과정에 참여해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만 답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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