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투티노 작곡, 여주인공 체지라 역에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여배우 소피아 로렌에게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의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두 여인’(영어명 ‘Two Women’, 이탈리아명 ‘La Ciociara’)이 55년 만에 오페라로 부활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은 이달 13일 저녁(현지시간) 이탈리아 작곡가 마르코 투티노가 작곡한 오페라 ‘두 여인’의 세계 초연을 한 데 이어 월말까지 5차례에 걸쳐 이를 상연한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5월 연합군으로 참전한 프랑스령 모로코 군인들이 이탈리아에서 저지른 집단 강간 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았다. 당시 성폭행 피해 여성은 약 7천 명에 이르렀다.
오페라의 원작인 이탈리아어 소설은 1958년 알베르토 모라비아에 의해 쓰였고, 1960년에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로 각색돼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체지라 역을 맡은 소피아 로렌은 1961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1962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이 작품으로 연기 인생의 절정을 맞았다.
오페라 ‘두 여인’의 줄거리는 소설이나 영화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장르의 특성과 극적 효과를 고려해 일부 플롯과 배경이 변경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패색이 짙어 가던 1943년 하반기, 과부 체지라는 로마 시내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16살 난 딸 로제타와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폭격이 심해지자 가난한 산촌 마을 초차리아로 피란한다. 이 과정에서 암시장 상인 조반니가 체지라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후 모녀의 로마 탈출을 주선해 준다.
피난민이 된 체지라와 로제타 모녀는 초차리아에서 이상주의자인 학교 교사 미켈레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친해진다. 그러던 중 존 버클리라는 미군 공군장교가 심하게 다친 채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사람들은 독일군의 보복을 두려워해 이를 외면하고 오직 미켈레와 체지라만 버클리를 간호한다.
이들 덕택에 생명을 건진 버클리는 동료 미군들을 찾아 떠나면서 자신이 죽으면 가족에게 전해 달라며 미켈레에게 편지와 시계를 맡긴다.
독일군이 초차리아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미켈레, 체지라, 로제타는 다른 곳으로 급히 피신한다. 그 사이에 나치 협력자로 변신한 악당 조반니는 이들이 머무르고 있던 현장에 나타나서 버클리가 미켈레에게 줬던 편지와 시계를 발견한다. 미켈레가 미군 장교에게 도움을 줬다는 증거를 잡은 조반니가 미켈레, 체지라, 로제타의 소재를 파악해 독일군에게 알려 줌에 따라 미켈레는 체포돼 끌려간다.
연합군이 항구도시 안치오에 상륙해 진군 중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체지라와 로제타는 초차리아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곳에 진주한 프랑스령 모로코 군인들이 두 모녀를 성당으로 끌고 가서 집단 성폭행하며, 그 사이에 조반니는 미켈레를 독일군으로부터 넘겨받은 후 살해한다.
연합군이 초차리아를 점령하자 나치 협력자로 처벌될 위기에 몰린 조반니는 이번에는 미군 편에 붙으려고 한다. 조반니는 챙겨 둔 미군 장교 버클리의 편지와 시계를 내놓으며 자신이 그를 도와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때마침 나타난 버클리가 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조반니의 거짓말이 들통나고, 성난 군중이 조반니를 공격한다. 이때 체지라는 “그런다고 미켈레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반니에게 린치를 가하는 군중을 제지한다. 그리고 체지라와 로제타 모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 출발을 다짐한다.
조반니라는 인물이 주요 악당으로 부각되고 미군 장교 버클리가 등장하는 등 오페라의 플롯은 소설이나 영화와 조금 차이가 있다.
주인공 체지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는 영상으로 공개된 인터뷰에서 데 시카 감독의 영화 ‘두 여인’을 대여섯번은 봤다며 “소피아 로렌이 연기했던 역할을 맡아서 나의 해석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며 기회”라고 말했다.
로제타(소프라노) 역은 새라 섀퍼, 미켈레(테너) 역은 디미트리 피타스, 조반니(바리톤) 역은 마크 델라반이 맡았다.
이 오페라의 음악 어법은 전통적인 조성음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총감독 데이비드 고클리는 기자회견에서 이 오페라가 19세기 말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칠레아 등이 쓴 이탈리아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전통을 부활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인 소프라노와 테너가 사랑하는 관계로 설정되고 이를 방해하는 악역으로 바리톤이 등장하는 점도 오페라 작곡가들이 전통적으로 즐겨 써 온 대립 구도를 따른 것이다.
무대 연출에는 제2차대전 당시의 전쟁 기록영화 장면을 무대 세트 위에 겹치도록 영사하는 방식이 자주 사용됐다. 역사적 배경을 영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샌프란시스코 전쟁 기념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초연의 지휘는 오페라단 음악감독 니콜라 루이조티가, 연출은 프란체스카 잼벨로가 담당했다.
이 오페라의 초연 프로덕션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과 함께 작품을 공동으로 위촉한 이탈리아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조에서 2018년에 다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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