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겨울옷 입은 가을/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겨울옷 입은 가을/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21-11-11 19:54
수정 2021-11-12 04:2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지난주 지리산 밑자락은 단풍이 채 들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노고단 언저리 산등성이는 제법 노랗고 붉은 기운이 비쳤지만 전형적인 가을 느낌은 아니었다. 스산한 바람 선뜩 부는 한적한 길가에 늘어선 산수유는 붉디붉게 열매를 맺었건만 잎사귀는 아예 검은빛이었다. 두어 주 전 설악산 단풍이 곱게 자리잡으려던 차 강원도 산간에 한파가 몰아쳐 잎들이 까맣게 메말랐다는 숲해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가을이 겨울옷을 입고 찾아왔다. 뚜렷한 사계절의 기후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뀐 지 한참 됐다. 마음속 가을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더위에 지친 몸 겨우 추스르느라 인생의 비의(秘義)를 곱씹지도 못했고, 떠나버린 것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감사하지도 못했다. 가을만의 정서로 차분해지기 전 몰아친 한파 앞에 사람들은 겨울 외투 속에 고개 묻고 종종거리기 바쁘다. 그나마 서울 도심에 흩날리는 샛노란 은행잎이 가을이 잠시 다녀갔음을 증명할 뿐이다.

두 장 남은 2021년 달력 뒤적거리며 뜨거웠던 여름 그 시절을 그리워함은 열정과 청춘의 회한일 테다. 여름은커녕 가을조차 상실한 시기, 쓸쓸하다. 때이르게 겨울 흉내 내는 가을 날씨 속 열정의 흔적을 찾는 노력이 간절하다.

2021-11-12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