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골목이발소/손성진 논설고문

[길섶에서] 골목이발소/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입력 2019-10-31 17:44
수정 2019-11-01 02:2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비누에 솔을 문질러 만든 거품을 목과 귀 옆에 바르고 가죽에 면도칼을 쓱쓱 갈면서 내뱉는 이발사의 구수한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가죽으로 어떻게 날을 세울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 가죽은 나중에 알고 보니 질긴 말가죽이었다. 면도 후 칼에 묻은 거품은 신문지 조각에 닦아 버려야 옛날식이며 제격이다.

타일 세면대에 머리를 숙이고 앉으면 이발사가 긴 손톱으로 비듬 하나라도 남을세라 박박 씻어 주었는데 그 개운함은 요즘 이발소에서는 느껴 볼 수 없다.

거울 위쪽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복제한 명화가 걸려 있었다. 소위 ‘이발소 그림’이다. 금붕어나 농촌 풍경 같은 ‘고급진’ 그림을 걸어 놓은 곳도 더러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푸시킨의 시는 이발소를 드나들며 다 외웠다.

오래된 동네들이 사라지면서 옛날 이발소도 거의 다 없어졌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이발소’에 일부러 들어가 머리를 깎아 보았다. 실로 수십 년 만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는 칠순 넘은 이발사의 가위 놀림은 유명 이발사에 뒤지지 않았다. 이발소 그림은 없고 대신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 것은 뜻밖이었지만 타일 세면기와 커다란 면도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sonsj@seoul.co.kr
2019-11-01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