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옷, 예의/이도운 논설위원

[길섶에서] 옷, 예의/이도운 논설위원

입력 2012-11-20 00:00
수정 201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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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내는 출장을 떠났고, 딸은 외갓집에 가 있다. 뭘 할 수 있을까. 옷장을 열었다. 숨이 막힌다. 오래된 옷들이 가득하다. 마음 굳게 먹고 모조리 처분할 생각이다. 옷 한 벌을 꺼낼 때마다 옛 생각이 따라 나온다. 추억의 절반은 음식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옷이 아닐까.

가장 오래된 옷은 가늘게 흰 줄이 쳐진 까만 여름 양복. 입사 면접 때 입었던 옷이다. 22년이 지났다. 툭툭한 카키색 양복은 여동생 약혼식 때 입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 사온 독특한 체크 문양의 감색 양복은 선볼 때 많이 입었다. 한때는 유행의 첨단이었지만, 지금은 촌스러워진 옷들도 수두룩했다.

한 벌, 한 벌 살펴보니 버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일단 걸어두면 유행이 바뀔 때 다시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버리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법. 오래된 옷들을 몽땅 싸서 세탁소에 맡겼다. 깨끗하게 손질한 뒤 처분할 생각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내 몸을 감싸고, 추억을 공유했던 나의 옷들에 대한 예의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2012-11-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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