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그런데 사태가 참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금융감독체제 개편이 핵심은 제쳐 두고 부분적인 논점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지난 3월의 정부조직법 개편에서 금융위원회의 조직 개편은 제외되었다. 따라서 ‘자리 보전’에 성공한 모피아는 남은 과제인 ‘금감원 쪼개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금감원에서 분리·독립시키자는 것이다.
금감원을 쪼개면 금융위가 조금 더 확실히 금융기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설사 실패해도 큰 문제는 없다. 어차피 쪼개기를 반대하는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보다 조직논리를 앞세우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각인되고 말 것이니까. 꽃놀이패가 따로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금융위원장이 위촉한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월 21일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중심으로’라는 감독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개편 방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감독체계 개편은 ‘사회적 실험’이어서 조심해야 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는 너무 과도하게 하면 “금융산업의 발전이 저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또 이런 논의를 할 것이니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의 조직 분리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서야 조금 가닥이 잡혔다.
그렇다면 이제 다 잘된 것인가. 여기가 바로 “묘한” 부분이다. 사실 금감원 쪼개기는 지난 2009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가 추진해 온 사업이었다. 그 첫 번째 가시적 표현이 당시 정무위원장이었던 김영선 의원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을 쪼개는 내용의 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금융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에 금융 안정의 책무와 감독권한 강화를 부여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였다. 금융위의 전략은 지급결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쏴서 한은법 개정을 법사위에 묶어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분리하는 법률을 제안토록 해서 금감원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당장 통과될 것 같던 한은법 개정안은 2년의 세월이 지나고 ‘영선 대 영선’의 결투를 거쳐 당초보다 후퇴한 기형적인 모습으로 2011년 8월 말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남은 반쪽의 과제인 금감원 쪼개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4년의 계산서를 뽑아 보면 비록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약간 체면을 구기고 TF에 참여한 교수들은 왕창 체면을 구겼지만, 이익집단으로서의 모피아는 잃은 것은 하나도 없이 얻을 것을 다 챙긴 모습이 됐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물론 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를 위해 금감원을 건전성 감독 부문과 행위규제 부문으로 쪼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큰 그림을 고치지 않은 채 변죽만 울려서는 전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모피아의 관치금융과 이권 추구를 통제하지 않은 채 그 밑에 금융소비자 보호 부서를 붙이건 분리하건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금융감독체계는 그 밑바닥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 그 출발은 금융위를 해체하고 정부가 할 산업정책과 공적 민간기구가 해야 할 금융감독 업무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2013-07-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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