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를 열다] 1967년 전화국에서 근무중인 전화교환원

[DB를 열다] 1967년 전화국에서 근무중인 전화교환원

입력 2013-04-24 00:00
수정 2013-04-24 00:3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1970년대와 그 이전에는 수동식 전화기가 주로 쓰였다. 수동식에는 자석식과 공전식이 있다. 모두 교환원이 필요하다. 자석식은 전화기에 붙은 핸들을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고 전화번호를 말하면 교환원이 연결해 준다. 공전식은 전화기를 들기만 하면 교환원이 나온다. 교환원은 ‘교환수’라고 불리기도 했다. 교환원은 가입자가 번호를 말하면 받는 사람의 전화로 연결해 준다. 사진은 1967년 3월 전화국에서 근무하던 교환원들의 모습이다. 이런 수동식 전화 연결은 전화 가입자가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0년에 전화 가입자는 8만 6600여명에 불과했다. 서울에서는 겨우 몇 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자동전화도 부분적으로 개통됐는데, 1960년 2월 24일 서울 영등포 전화국에서 자동전화가 개통될 때에는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했다. 당시 이 전화국에 총 42명의 전화교환원이 근무했다고 한다.

전화는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보급이 따라주지 못했다. 한 동네에 전화가 한 대밖에 없는 곳도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같이 썼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전화 신청이 밀려 백색전화 한 대 값이 250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집 한 채 값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백색전화는 투기의 대상이었다. 백색전화는 소유할 수 있어서 사고 팔 수 있는 전화를 말한다.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아 양도할 수 없는 전화는 청색전화라 불렀다. 백색과 청색은 전화기 색깔이 아니라 가입 대장 명부의 색깔이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2013-04-24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